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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복지국가에서의 공존을 꿈꾸며. (도서 명견만리 독후감)

by Life on balance 2026. 2. 10.

이 글은 도서 '명견만리 : 대전환, 청년, 기후, 신뢰 편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가치를 말하다)' 을 읽고 느낀 소감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는 강력한 봉쇄령과 록다운 등으로 인하여 소비와 생산이 동시에 중단되면서 심각한 고용위기를 가져왔다. 이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서, 모든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 거대 충격을 안겼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공공복지 확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사회안전망 강화가 시대적 요구로 부상했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려면 국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이 필수다. 이는 유럽 복지국가에서 이미 하고 있는 일들로써, 우리나라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며 이에 동참하고 나섰지만, 이는 사실상 보편적 복지안전망의 부재로 인한 일시적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지난 60년 동안 유례없는 성장을 이룬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많은 일자리를 통해 빈곤과 불평등을 크게 줄임으로써 경제성장이 곧 강력한 복지정책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경제는 대기업 주도의 성장체제로 변화했고 이는 산업의 자동화를 비롯하여 인건비 절약을 위한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노동자간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했다. 대기업은 성장을 거듭했지만 좋은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구조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코로나19와 만나 실업·빈곤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성장할 수 없게 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혁신 역량’이다. 사회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오늘날 혁신 역량의 성장은 국가에 대한 신뢰가 저변에 깔려 있어야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실업, 질병, 돌봄, 노령 등 어떠한 사회적 위험에 처해도 기본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 일변도의 성장에서 나아가 사람들이 생계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가치있는 일을 찾아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국민의 혁신 역량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현실은 아직 불공정하다. 일자리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그늘에서 벗어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좋지 못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들은 마침내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되고 말았다. 대학 졸업자는 늘어나는데 일자리는 계속 줄어드니 취업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몇 해를 취준생으로 사는 동안 결혼도 내 집 장만도 모두 어려운 일이 된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임금상승률도 저하되었고, 일자리도 줄었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 재력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인생의 출발선을 나누고, 이는 기회불평등과 소득불평등으로 이어지고 반복되며 평생의 기준선이 되고야 만다.
 
사회적 성공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타고난 환경이나 다른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는 불공정 사회를 경험한 이 시대의 청년들은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건설장비 임대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몇 군데 지역을 돌며 살았다. 자주 이사를 해도 학교생활에 적응하거나 친구를 사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웃 어른을 보면 그게 누구라도 먼저 인사를 드리고, 가끔 부모님이 늦게 귀가하실 때는 어느 친구집이든 들어가서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아이들을 귀찮아하지 않기는 우리 부모님이나 친구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였고, 가난한 집은 가난한 대로, 부유한 집은 부유한 대로 함께 어울리는 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누가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입고 있는 옷이 무슨 브랜드인지, 어떤 차를 타는지. 그 때는 그런 것들보다 사람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다. 오롯이 사람에 집중하여 인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는 노인은 더 이상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한다. 돈 없는 부모 아래서 기회의 평등을 박탈당하며 자란 아이는 청년이 되어서도 타고난 부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음을 거듭 체감한다. 노인복지와 청년지원사업 사이에 낀 3050세대는 가장 사회활동이 많고 돈을 많이 버는 세대라는 인식에 갇혀 그렇지 못한 사정을 이해받지 못하고 각종 지원과 혜택에서 소외당한다. 아이와 청년, 중년과 노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처지를 고려한 국가 차원의 사회복지는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몇 해 전 한 대통령 후보가 ‘간병 살인’의 가해자가 된 20대 청년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다. 이 청년은 오래도록 병을 앓는 아버지로 인해 돈벌이도 하지 못하고 궁핍하게 살다 환자인 아버지를 그대로 방치해 죽게 만들었다. 죽이지 않았지만, 죽인 셈이다. 이 사건은 환자가 있으면 가족이 모두 함께 고통받는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는데, 이 대통령 후보는 환자인 아버지를 방치 살해한 20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분들과 간병으로 고생하는 가족분들이 사각지대 없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 사건이 “가난의 대물림, 가족 한 명이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는 간병의 구조, 그로 인해 꿈과 미래를 포기하는 청년의 문제”까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가 오롯이 담겨 있음을 시사했다(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개한 이메일에서 발췌).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의 개막은 빠른 속도로 언택트(Untact)에서 온택트(Ontact)로 이어졌다. 각종 디지털 기술로 빠르게 연결되는 이른바 ‘초연결’ 사회에서 위기를 타개하고 계속 성장하기 위한 좋은 전략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피보팅 전략이다. 코로나 팩데믹으로 인하여 기업과 노동자, 자영업자를 비롯한 개개인의 삶이 모두 위협당하고 있는 지금, 이 복합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특정 대상이 아닌 국민 전체를 향한 복지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가와 세계 정세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는 경제 성장과 회복이 아닌 복지국가로의 피보팅 전략을 세워야만 한다.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든든한 복지국가의 울타리가 세워진다면 비로소 국민은 실패를 두려워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혁신 역량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